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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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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fine artist 조준영에 부쳐

현대의 디지털 매체의 대중화는 실재를 뛰어넘는 컴퓨터에 의해 생산된 미디어 아트와 같은 시각적 환기성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미술의 양상들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미디어 아트는 첨단 과학기술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복제, 합성, 변형의 과정을 거쳐 ‘붓으로 그리다(drawing)’의 전통적 회화 행태를 전복시키며 자신의 예술적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캔버스에 이미지가 올려지는 형태가 아닌 파일로 그 존재가 유지되며 물체를 통해야만 시각화가 이루어진다는 독특한 자기만의 형식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여기에 ‘디지털 파인 아트’의 영역을 개척한 작가 조준영이 있다. 동양회화를 전공한 그가 종이와 먹을 사용한 부드러운 붓을 접고 가상공간을 캔버스로, 프로그램을 행위로 만들어지는 디지털 영상에 천착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준영의 회화세계는 한강과 같은 현실에 존재하는 리얼리티의 일화(episode)가 1차적 모티프로 사용된다.

장 바티스트 바이에르(Jean-Baptiste Barriere)가 시뮬레이션의 예술적 차원이란 기억과 창조, 현실과 잠재성 간의 변증법을 야기하면서, 현실과 쉼 없는 관계를 맺으면서 현실을 연장하는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사진은 가상공간 안에서 복제되고 변형되어져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새로운 환상의 세계로 완성되고 있다. 작가의 화면은 신과 자연의 법칙을 상징하는 하늘과 일상의 인간계를 상징하는 한강과 아파트가 있다. 상단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 1903에서 1963의 작가의 가족과 깊은 정보를 갖는 상징적인 숫자와 오른쪽으로 흐르는 0에서 365까지의 인간의 무질서를 상징하는 숫자들이 하단에 구성된다. 파스텔톤의 오랜 작업시간을 요하는 색 구름들은 화면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무지개를 내리며, 신이 내린 축복의 성스러운 장면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하겠다.

즉 조준영 작가의 화면에는 언제나 존재하는 신에 관한 솔직한 고백을 구름과 한강, 숫자라는 특별한 의미 기호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 작가의 작업들은 정선의 <인왕산도>와 같은 고전적 명화를 변형시키거나 자연을 추상적인 선으로 표현한 <디지털산수> 시리즈, <기마도>와 같은 전통에 근간을 두고 변형을 가한 작업들을 해왔다. 움직임과 정지. 실제와 가상이 혼합된 작가의 이미지들은 디지털 산수에서도 볼 수 있듯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동양회화의 선맛을 구현하려는 일련의 노력들로 볼 수 있다. ‘과학기술의 리얼리티(실재화)’라는 목적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작가가 이룬 그간의 작업들은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가상공간이 만들어낸 동양화의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는 동양화를 공부한 작가가 구현하고자 했던 화면의 목표였을 수도 있지만 추사 김정희 이후 한국 근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서예가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선생의 외손자라는 사실에서 그가 고민하던 화면의 구성이 가문의 예술적 풍토와도 영향이 깊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근자의 작가는 삶의 축복을 노래하듯이 좀 더 일상적인 내용을 가상의 그래픽을 적용한 익숙하지만 변형된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조준영은 만들어진 파일을 프린팅하여 이미지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시간의 작업량을 요하는 다양한 색 구름들은 분홍빛, 노란빛 등 치밀하게 계산된 조작을 거친 후 같지만 다른(same but different-이는 작가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동어 반복과 상사놀이를 통하여 초현실주의자들의 주제표현 방식을 대입하며 시각적 유희를 안겨준다 하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디지털 아트가 갖는 예술 표현성에 있어서 수면위로 분명하게 노출되는 근본적 성격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시간성과 공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정지된 회화는 테크놀로지에 의지한 동영상이라는 움직임으로 시각(생물학적인 눈)이 가장 잘 인지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실재하지 않는 상상공간의 무한 가능한 창의적인 가능성을 컴퓨터 그래픽이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가운데 회화의 시간성은 인류가 조형작업을 해온 이래 난제 가운데 하나였다 할 수 있다. 고대의 한 화면에 동일한 주인공이 두 번 등장하여 시간의 전개를 보여주는 동도이시(同圖異時)의 기법이나 고려불화의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와 같이 화면을 여러 개로 분할하는 스토리 전개의 형식과 같은 고전적 회화의 틀을 디지털 아트는 파괴하고 있다 할 것이다.

또한 디지털 아트의 시각은 북송대 이후 발전해온 3원법(심원, 평원, 고원) 즉, 전지전능한 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놀라운 정신적인 시각의 표현방식이 미디어 아트의 시각 연출에서 성공적으로 완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르네상스 시대 이전으로 되돌아가 원근법적 환상으로, 다시 말해 정신적 이미지로 회귀하게 된 셈이다 라고 말한 플로랑스 드 메르디외(Florence de Mredieu)의 지적은 참으로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지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즉, 작가 조준영이 서술해 내는 움직이는 화면속의 이야기들은 인류가 꿈꾸어 오던 회화의 시각적 완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빛을 쏘아 검은 방에서 찬란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미디어아트는 암굴의 마돈나나 검은 질을 통과해야만 하는 탄생의 과정과 같은 신성한 통과의례를 닮아 있다. 즉, 작가가 동심으로 회귀한 듯한 무한히 변해가는 파스텔빛 구름을 통해 말하는 시간, 우주 그리고 자연의 법칙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는 흰 캔버스를 마주한 고뇌하는 작가와 같이 신성성을 내포하고 있다.

디지털 아트의 영역은 무한히 발전할 것이며 그 높은 곳에 작가 조준영의 거목과도 같은 작업들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